
#18
회화관 관람을 대략 마치고 이제 바티칸 투어의 마지막이자 절정이 되는 시스티나 예배당으로 간다. 흔히 [천지창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신이 아담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그 장면으로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가 있는 곳. 또한 그가 [최후의 심판]이라는 또 하나의 대작을 남긴 곳이기도 하다. 이 작품들의 위대함을 어찌 감히 나의 초라한 글줄 따위로 묘사할 수 있을까. 괴테는 [한 인간의 능력이 어디까지인지 보려면 시스티나 예배당에 와서 이 작품들을 보라]고 했다 한다. 천장화의 크기는 길이 36미터 폭이 13미터. 완성까지 사년이 걸린 이 그림 속에 미켈란젤로는 자기 스스로를 -이렇게 표현하면 대가에 대한 무례가 아닐지 조심스럽지만 -[갈아넣었다]. 그 제작 과정의 어려움이야 일일이 옮기자면 글이 너무 길어질 것 같고. 꼬박 사년동안 매일 몸을 젖힌 채로 바로 눈으로 떨어져 대는 물감을 맞아가며 작업을 한다고 상상해 보라. 나는 기껏해야 몇 분간 목을 뒤로 젖히고 그림을 보는 것 만으로도 목이 아팠는데. 그는 이 작업 때문에 평생 몸에 짊어지고 가게 될 장애마저 얻었다고 한다. 그것이 예술에 대한 열정이든, 아니면 외골수의 구제불능 고집이든, 나는 스스로의 신념에 대해 저렇게 자신의 몸을 파괴하면서까지 몰두할 수 있을까? 천장화의 예술적 성취를 넘어 무엇보다 그 처절한 [인간의 이야기]에 깊게 내 마음이 울렸다. 그 그림을 접했던 순간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19
감동의 홍수 속에서 다시 발걸음을 돌려 속세의 공기를 마신다. 성 베드로 성당의 옆구리 면 벽. 로마의 정취. 그나저나 이것이야 말로 덧붙여 나가는 건축의 표상일까? 그래도 나한테는 너무 재미있는 장면. 가슴 떨리게 풍부하지 않은가!

#20
성 베드로 성당의 위풍당당한 정면. 너무 커서 가까이서는 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지금 성당이 세워진 자리는 로마 시대에는 도시 변두리의 공동묘지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예수의 열두 제자 중 한명이었던 베드로의 무덤이 있었다. 4세기에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그의 무덤 위에 기독교 최초의 성당을 세운다. 그후 세월이 흐르면서 이민족의 침입과 교황권의 쇠락 등으로 폐허가 되다시피 한 이 성당은 1506년 같은 자리에 완전히 새로 지어지기 시작했다. 몇 차례의 설계 변경과 수많은 거장 건축가들의 손을 거쳐 성당은 1612년 지금의 이 모습으로 완공되었다. 명실공히 최고, 최대의 성당이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성당 자체에 놀라고, 그 뒤에 숨어 있을 무수한 인간의 피와 땀에 놀라고, 그 인간에게 피와 땀을 기꺼이 흘리도록 만든 종교의 힘에 놀란다.

#21
사실 저 기둥 하나의 크기는 이정도. 그야말로, 거대하다. 기둥 밑 부분을 보면, 튜브 처럼 두개의 띠가 두르고 있는데, 서양 기둥 양식의 일부이다. 사실 그 기원은 육중한 기둥이 내리 누르고 있기 때문에 받치고 있는 것이 눌려 삐져 나온 것처럼 만든, 말하자면 섬세한 표현인데. 이정도 기둥이면 시적인 표현의 차원을 넘어서 정말로 저렇게 될 것 같다.

#22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아름답고 화려하다. 최고라는 찬사는 이런 곳에 쓰라고 있는 것이겠지. 이런 것은 그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구구절절 수사를 늘어낼 수록 실체와는 점점 멀어지고 스스로의 부족한 글실력이 드러날 따름이다. 여기에 처음 왔을 때의 기억이 다시 떠오른다. 지금으로부터 삼년 전에 처음 유럽에 왔을 때의 일이다. 그 때도 이렇게 바티칸 미술관을 둘러보고 마지막으로 성 배드로 성당에 들어왔는데 그날 마침 이 곳에서 교황이 집전하는 미사가 있었던 것이다. 나도 정말 운 좋게 얼떨결에 참여할 수 있었다. 성당 양쪽으로 빼곡하게 의자가 놓여지고 그곳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수녀님들과 성직자들. 조용한 대성당. 향이 피어오르고,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울린다. 라틴어(처럼 들렸다)로 진행되는 미사. 나는 신앙이 없지만, 그 뭔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어떤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이 건축물이 정확히 그 스스로의 용도로 사용되던 순간. 그리고 몇백년의 시간을 뛰어넘은 것 같았던 느낌.

#23
하지만 그래서 그 당시에는 성당을 구석구석 볼 수는 없었다. 이번 기회에는 처음으로 더 안쪽까지 들어가서 본다. 유럽 여행을 할 때 로마는 맨 마지막으로 오는 것이 좋다. 그 후에 어떤 도시에 가서 어떤 것을 보더라도, 로마에서 보다 더 대단한 것을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이 성당을 본 뒤에는 그 어떤 유명한 도시의 보석같은 대성당을 보더라도 시시하게 느껴질 지도 모른다.

#24
돔 지붕. 미켈란젤로 설계. 사진에서 마치 금박을 입힌 것 처럼 보이는 것들, 그것들은 [마치 금]처럼이 아니라 진짜 금이다. 이 성당을 짓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원이 투입되었을지를 단적으로 알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하나의 대성당은 그것을 지은 주체, 도시가 되었든 아니면 왕국이 되었든, 그의 모든 역량의 총 집결이었다. 최고의 기술자, 최고의 예술가, 최고의 장인, 그리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규모의 비용과 인력 투입. 몇 십 몇 백년의 건축기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총괄하던 자리에 최고의 건축가가 있었다. 어떤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대성당들이 지어지던 시기는 건축가라는 직종에게 정말 꿈과 같은 시기였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그런 시기는 이미 지나가 버렸고 이제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25
성당 끝 교황의 제대. 그 자리 바로 밑에 베드로의 무덤이 있다.

#26
이 가운데 복도 안에도 어지간한 성당 하나 정도는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규모가 너무 거대해서 오히려 그렇게 크다는 느낌이 잘 안 들지만. 그리고 그 넓은 규모에 빈틈 없이 계획된 장식들. 이 안에 들어오면 정말 다른 세상에 와 있다는 느낌이다.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실시간으로 화상통화를 하고, 하늘 자락 떠있는 화성에 로봇을 보내는 지금의 시대에도 그렇게 느껴지는데, 몇백년 전 과거에는 어땠을까? 신이 존재한다는 것,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을 그 몇백 마디의 설교보다 이 성당 하나가 효과적으로 설득시켰을 것이다.

#27
성당을 나와서. 펼쳐지는 성 베드로 광장. 성당의 규모에 걸맞는 크고 굉장히 기념비적인 광장이다. 사실 광장 자체만 놓고 본다면 너무 크다는 생각도 좀 드는데, 하긴 만들어질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광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을까? 바로 세상 사람들을 이 품에 다 끌어 안겠다는 제스처인 것. 사진을 제대로 못 찍어서 꽤 아쉬운데 (이번 경우에는 바닥이 너무 찍고 싶었나보다...ㅎ) 아주 아름다운 광장이기도 하다. (이 사진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사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은데, 아무래도 두번째 방문이어서 그런지 전체를 찍기 보다는 전에 못 봤던 것들을 세부 위주로 기록하자는 생각으로 찍어서 오히려 이런 글에서는 쓸만한 사진이 없는 것 같다) 한편, 외부에서 막 행사가 있었는지 무대도 설치되어 있고 광장 가득 의자가 놓여 있다.

#28
끌어 안는 한쪽 팔의 모습. 한편 광장에는 이집트에서 훔쳐가져온 오벨리스크가 솟아 있다. 로마 시대에 이곳 근처의 전차 경기장에 있던 것을 옮겨서 세운 것이라고 한다. 아니 이교도의 기념물을 기독교 세계의 중심에 떡하니 세워 놓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반박에 교황청은 이 오벨리스크만이 당시 순교한 최초의 기독교도들을 지켜본 유일한 증인이라는 일견 그럴싸한 대답을 내놓았다는데. 내 생각에는 광장의 크기에 걸맞는 시각적인 구심점이 필요해서 마침 옆에 있었던 것 잘됐네 하고 옮겨 세웠을 것 같다. 진짜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적으로 이 아름다운 광장에 화룡점정이 되었다는 사실은 분명한 것 같다.

#29
기둥 복도. 베르니니의 설계.

#30
뒤로 보이는 것은 교황의 집무실이 위치한 건물. 근사하다.

#31
입면. IN·HONOREM·PRINCIPIS·APOST·PAVLVS·V·BVRGHESIVS·ROMANVS·PONT·MAX·AN·MDCXII·PONT·VII사도들의 으뜸의 영예로 선출된 바오로 5세 보르게세 교황, 재위 7년, 1612년

#32
우리가 박물관 안에 있을때 폭풍이 지나갔는지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었고 길거리 곳곳에는 바람에 부러진 나뭇가지들이 나뒹굴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간 다음에도 폭풍같은 소나기가 몇번이나 시원하게 쏟아부었고. 하지만 내 머리 위에 천장이 있다면야, 그렇게 쏟아지는 비도 좋은 구경거리일 뿐이다. 거참 시원하게도 쏟아지는구나, 하고. 밖에서 돌아다니는 날에 이런 날씨었으면 어땠을까? 운이 기가막히게 좋았던 것 같다. (신의 가호였을까?) 저녁을 먹고서는 특별한 일정 없이 숙소에서 쉬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노랫소리 같은 것도 좀 들렸던 것 같고ㅎ). 사실 가족이 이렇게 한자리에 있은지도 오래간만이라 굳이 어디 힘들게 돌아다니지 않고 앉아서 쉬기만 해도 충분히 좋았다 (물론 꼭 오래간만이어서 그런것은 아닐꺼야 ㅎ). 이렇게 로마에서의 마지막 날도 저물어 간다. 삼일동안 로마에서 묵었다고 했지만, 사실 하루는 이탈리아 남부에 갔다 왔기 때문에 이틀을 있었던 셈이다. 너무 짧게 있을 수 밖에 없었던 일정은 여전히 아쉽다. 게다가 그 짧은 일정동안 봐야 할 것들을 몰아 보느라 너무 쫒기듯 다닌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하지만 이런 일정은 우리에게 어느 정도 숙명인 것 같기도 하다. 오래 있을 수 있다면야 오래 있으면 당연히 좋겠지만, 그런 여유가 어디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겠는가. 같이 올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사실 너무나 큰 행운이었겠지. 역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보다. 이제는 그저 트레비 분수에 던져 넣은 동전의 효험을 믿으면서, 언젠가 다시 이 영원의 도시에 돌아오기를 기약할 수 밖에.
#
다음 포스트에서 계속...


덧글
Luckybear 2011/01/18 12:40 # 답글
꼼꼼이 잘 기록해두셨네요.. 저도 바티칸 가서 사람들따라 한바퀴 다 돌았는데 중간에 않본게 있어서 허겁지겁 다시 갔다가 사진 휘리릭 찍고 다시 뛰어서 온기억이 나네요..ㅋㅋ
서연 2011/01/19 07:41 #
흥미 반 공부 반 해서 쓰면서 인터넷으로 자료도 찾아보고 저도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바티칸이 넓이는 좁지만 볼 것들의 밀도가 참 높죠, ㅎ쩌네정 2011/01/18 20:45 # 답글
저도 여름에 갔었는데, 사람 너무 많아서 감동을 느낄 여력이 없었어요. 다음에 꼭 비성수기에 다시 가보려고 벼르고 있습니다ㅠㅠ서연 2011/01/19 07:24 #
그러게요, 항상 사람이 많아서 사실 집중하기가 힘들죠, 그때 처한 상황에 따라 보는 것의 인상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런 것도 인연 같은 걸까요? 작품과의 인연.. 그러면 다음 기회에는 꼭 좋은 인연 닿으시길!불별 2011/01/18 21:32 # 답글
너무 거대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더군요.서연 2011/01/19 07:26 #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현실 감각이 희미해지는 느낌.Cloudia 2011/01/19 00:25 # 답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서연 2011/01/19 07:27 #
감사합니다 :)홍차도둑 2011/01/19 03:06 # 답글
로마의 칼리굴라 황제가 자기 개인 경기장을 만든 곳이 지금의 삐에트로 광장이기도 하죠^^그 경기장의 트랙의 반환점 부근에 세워놨던 오벨리스크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건데...이 옮기는 것이 공학적 설계에서의 장관이었던지라 '옮기는 장면'만 보려고 몰려든 사람들이 꽤 되었답니다 ^^;
실은 로마를 늦게 들러야 하는 이유 라는 제목만 보고 '소매치기 당하셨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이노무 이탈리아의 소매치기들이란...T_T
서연 2011/01/19 07:33 #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오벨리스크의 무게가 300톤에 달했다고 하네요, 사실 말로는 감이 잘 안오지만 그 시대에 그 엄청난 무게를 옮겨 다시 세우는 것은 정말 대단한 공사였겠죠, 그거 똑 뿌러지기 쉽게 생긴것 수평 맞춰서 잘 땡겨줘야 할 것이고.. 세우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그래도 제가 그 시대에 살았다면 구경 가보고 싶었을 것 같아요.. ㅎ소매치기는 여행 내내 정말 주의해서 이탈리아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런데 오히려 맘 놓고 들어온 스위스에서 일이 터졌다는. 정말 뒤통수 제대로 맞았죠. ㅠ
Sisyphos 2011/01/19 03:56 # 답글
맙소사... 사진만 봐도 압도적인 공간감이 느껴지네요. 마치 직접 다녀온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글~ 잘 보고 갑니다^_^서연 2011/01/19 07:38 #
그걸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저에게는 너무 좋은 칭찬이네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D2011/01/19 09:52 #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서연 2011/01/20 05:52 #
그다지 자라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한없이 땅을 파고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더 드는 요즘입니다. 기대따위.. ㅎㅎ그나저나 연구실이라든지 큰 모니터 없나? 흐흐흐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니 고마와
김계옥 2011/01/19 16:54 # 삭제 답글
갈 때마다 감동적인 곳! 이 사진들과 글을 보면서 또 감동! 내가 쓴 여행기가 갑자기 부끄러워지네.서연 2011/01/20 08:13 #
아니 무신 말씀을! 일본 여행기 너무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정말로 진짜로이모 2011/01/20 22:13 # 삭제 답글
와우!!! 여기 올라온 사진들 정말 좋다난 한번도 좋은 카메라가 갖고싶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데... 여기사진들보니 환상이네
재주없는사람이 연장탓한다는데 실력차이인가?
암튼 우리가 이렇게 좋은 곳을 다녀왔다는걸 새삼 확인하는 뿌듯함
서연 2011/01/22 10:24 #
이모 안녕하세요,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긍게...연장도 쬐까 좋고 실력도 쬐까 있는가... ㅎㅎㅎ 농담이에요 과찬의 말씀이십니다.2011/02/06 13:47 # 삭제 답글
비공개 덧글입니다.서연 2011/02/07 04:04 #
니콘 D80에 렌즈는 탐론 17-50으로 찍었습니다.